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서태지와 아이들 (문단 편집) == 해체 & 은퇴 == [[1996년]] [[1월]] 중순, [[서태지와 아이들 4집|4집]]의 가사, 이데올로기 등에 대한 온갖 탄압을 견디며 제2 활동곡인 <[[필승]]> 라이브를 뚝섬에서 마친 서태지와 아이들은 갑작스럽게 완전히 잠적하였다. 잠적 후 팬들 사이에서뿐 아니라 뉴스에서 다뤄질 정도로 논란이 있었고, 멤버들이 죽었다는 설이 파다하게 나도는 등등 며칠간 굉장히 큰 소란이 일었다. 그리고 얼마 후... '''[[1996년]] [[1월 31일]], [[성균관]] 유림회관[* 유림회관이 은퇴회견장으로 잡힌 것도 너무나 급작스럽게 전격적으로 해체하는 바람에 당일 장소를 대관할 곳이 이 곳밖에 없어서였다고 한다.] 기자회견장에서 [[서태지]]의 "우리가 시도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보여 주었다"라는 말 한 마디로 서태지와 아이들은 은퇴한다.''' 전국의 초, 중, 고, 대학생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다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와 허탈감에 빠졌으며 심지어 3대 방송사 9시 뉴스의 메인으로 소개되었다.[[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drama&no=4863|#]] 이 때문에 한때는 정치권의 외압이다,[* 서태지가 3집에서 [[발해를 꿈꾸며]]를 발표하며 통일 주제에 관심을 보였고, [[교실 이데아]]에서는 한국 교육의 실태를 비판하였는데다가 4집에서는 [[시대유감]] 사전심의 사태로 당시 집권당이던 신한국당과는 제대로 척을 졌고, 이 반대급부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태지에게 관심을 가졌다. DJ는 2004년 서태지의 컴백쇼 '라이브와이어'에 메시지 영상으로도 등장한다.] [[조직폭력배]]가 은퇴에 개입했다는 등의 소문이 돌았다. 당시 서태지와 아이들이 해체했을 때 대중들의 반응은 현재 현역으로 활동하는 아이돌 가수들의 팬들만 좌절한 수준이 아니라 사실상 온 국민들이 아쉬워 하는 정도였다 청소년들의 영원한 우상이라고 불리던 인기 최정상의 아이돌 그룹이 어느날 갑자기 뜬금없이 은퇴 선언을 했기 때문이다.[* 2020년대로 치자면, [[방탄소년단]]이 갑작스레 해체 및 은퇴를 선언했을 때 불러올 상상할 수 없는 파장과 전국민적 쇼크라고 생각해 보면 될 것이다. 한편 당대에는 몇년 뒤 2000년과 2001년 나란히 가요계 거대 팬덤을 거느린 [[젝스키스]]와 [[H.O.T.]]가 해체해 서태지급은 아니어도 전국적인 파장을 일으켰었다.] 이 서술의 내용이 단지 서태지와 아이들을 띄우기 위해서 말하는 것도 아니고, 과장을 조금 덧붙여서 거짓말이 아니라 '''[[대한민국 대통령]]이 하야했다는 반응과 거의 비슷했을 정도로 대한민국의 10~20대 정도의 학생들은 너 나 할것 없이 모두 다 큰 충격에 빠졌으며 "사실상 대중가요계가 텅 비었다"는 반응이 나왔을 정도였다. 심지어는 당장 1년 전에 [[김일성]]이 사망했을 때보다도 그 실질적인 임팩트는 컸다.''' 은퇴가 확정된 것이 아닌 발표만 났던 [[1월 20일]]~[[1월 30일|30일]] 사이 서태지와 아이들의 이야기는 학교 아이들 간 최고의 소재였다.[* 더군다나 그 때는 대부분의 초중고교가 아직 [[겨울방학]] 기간이었다.] 당연히 골수 여학생팬들은 물론 남성 팬들까지 해체를 반대한다면서 매일마다 서태지의 소속사나 집 앞에서 시위를 벌였을 정도였다. 일부는 집에 담을 넘어 들어가 서태지가 사용한 물건을 가지고 나오기도 했다. 이 때 각 일간신문 사회면에서는 "[[X세대]], '집단 히스테리' 증상", "난장판이 된 서태지 집 앞", "오빠부대 '집단 히스테리' 증상", "자살도 불사하겠다", "서태지의 결혼/은퇴에 대비해 300여 명 자살 클럽 결성설" 등지의 제하를 달아 보도했다. 당시의 증언을 빌리자면, 당시 [[초등학생]] 고학년이던 1980년대 초반생들 사이에서도 "도대체 왜 해체하는데?" 라는 말밖에 안 나왔다. 초등학생들도 저학년들은 시끄럽고 알 수 없는 노래를 한다고 싫어하는 친구들이 없지는 않았지만 고학년들은 서태지와 아이들을 싫어하는 반응은 거의 없었다. 이들의 형/누나뻘인 1970년대 중~후반생들조차 매일마다 서태지의 음악을 들었고 초등학생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있어서 만화를 보면서도 지상파 음악방송 할 시간에는 당연히 채널을 돌리니까 노래 들으면서 랩 열심히 연습하는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특히 당시 막 나타났던 M.NET, MTV에서 서태지와 아이들 노래는 정말 지겹게 흘러나왔다.[* 당시 엠넷과 엠티비는 선진적 음악프로그램을 지향하고 있어 오히려 지상파보다 서태지와 아이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 시기 두 방송사에서 서태지와 더불어 지상파보다 더 크게 조명되던 아티스트가 당시 N.EX.T의 리더인 '''[[신해철]]'''. 사실상 현대 대한민국 음악계에서 이 두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두 방송사가 만들어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등학생 고학년 정도라면 서태지와 아이들은 늦게나마 듣고 자랐기 때문에[* 시기상으로 봤을 때 교실 이데아, 필승, 컴백홈 정도는 알고 있을 나이대이며 3집과 4집으로 활동했을 때다.] 싫어하지도 않았고 무대에서의 퍼포먼스는 멋지게 느껴졌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이 세대는 [[H.O.T.]]와 [[젝스키스]]의 데뷔를 보면서 [[한국 아이돌/역사|1세대 아이돌]]을 응원하는 중심세력이 된다.'''[* 당시의 초등학교 고학년~중고생들도 성인들 못지않게, 서태지와 아이들이 해체되었다는 사실에 전국적으로 충격을 받은 것은 똑같았다. 사실, 서태지와 아이들의 은퇴 이후 H.O.T.는 1996년, 젝스키스는 1997년에 데뷔했다. 비록 H.O.T.의 팬들과 젝스키스의 팬들이 서로 반목하는 관계로 유명했지만, 서태지와 아이들이 은퇴하고 H.O.T.의 팬들과 젝스키스의 팬들로 서로 갈라졌기 때문에, 서태지와 아이들이 활약하던 시기에는 너 나 할것 없이 모두 다 서태지와 아이들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앞으로도 아이돌 가수들이 은퇴를 했을 때 "서태지와 아이들처럼 큰 충격을 받는 대중들의 반응은 앞으로도 나오기가 어려울 것이다"라는 의견도 있었고, 조정선 MBC 라디오 PD도 1997년 3월호 [[https://3.bp.blogspot.com/-N12qqhqEVpE/XYoCid1mRGI/AAAAAAAAKhA/5rn9uIEc4LsovIsS0Rz50-50wsf5X9XRQCLcBGAsYHQ/s1600/042.jpg|기사]]에서 서태지에 대해 긍정적이었으나 그가 떠난 자리는 비슷한 패턴을 지닌 랩 댄스 음악으로 황폐해졌다고 하면서 "서태지의 음악이 과연 혼자만의 음악이 아닌, 대중음악의 다양성에 기여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서 [[조윤진]]이 서태지와 아이들의 광팬으로 나오는 것이 너무나 당연했을 정도로 시대 [[고증]]에 너무 잘 맞았고, 골수팬들의 충성도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했다. 극 중에서 조윤진은 서태지와 아이들이 은퇴하는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은 나머지 아예 식음을 전폐하자 삼천포가 못내 안타까워하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나왔을 정도로 골수팬들의 반응은 거의 다 그랬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